2026. 4. 23. 15:31ㆍ카테고리 없음
아이들은 오늘이 가장 어리다.
육아의 무게 속에서 다시 숨 고르기
결혼 전부터 나는, 아이를 낳으면 무엇이 가장 힘들어질지 생각하고 있었다.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쓰지 못하게 되는 바로 그것이었다. 그래서 아이를 갖는 일이 막연히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순간에 찾아온 임신 소식 앞에서 나는 두려운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그렇게 시작된 육아는 생각보다 훨씬 깊고 넓은 세계였다. 남편이 틈틈이 도와주었지만 육아의 대부분은 내 몫이었다. 어느 순간 나는 ‘나’라는 사람보다 ‘엄마’라는 역할로 더 많이 존재하고 있었다. 아이는 너무 사랑스러웠다. 그러나 ‘나’라는 사람의 자리가 점점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육체적인 피로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마음이었다.
아이 하나로도 벅찼던 일상은 둘이 되면서 더욱 분주해졌다. 두 아이에게 충분히 집중하지 못한다는 마음 또한 나를 지치게 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과 학교에 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의 역할은 여전히 끝나지 않는다. 집 안에서 나는 요리사이자 청소부이고, 선생님이자 운전기사이며 때로는 스타일리스트도 된다. 나는 아이들에게 가장 가까운 매니저인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에게 도움이 되었던 것은 생각의 방향을 조금 바꾸는 일이었다.

먼저, ‘엄마’라는 이름 속에 나 자신을 가두지 않으려 했다. 짧은 틈이라도 생기면 나의 시간으로 활용하려 노력한다. 운동을 하기도 하고 관심 있는 분야의 수업을 듣거나 작은 취미활동을 만들어갔다. 그 시간들은 나에게 여전히 성장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또 하나 깨닫게 된 것은 육아가 나의 역량을 넓히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이의 성장과 교육, 인성, 친구 관계까지 아이의 삶을 지켜보는 동안 나는 끊임없이 배우게 된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아이와 함께 부모도 다시 자라나는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은 그 자체로 이미 충분하다는 사실이다. 밥을 잘 먹지 않을 수도 있고, 공부가 기대만큼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에게 바라는 많은 것들은 결국 나의 욕심이었음을 알게 된다. 이제는 그저 사랑하고 믿어준다면 아이는 자신의 속도대로 충분히 잘 자랄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아이들은 오늘이 가장 어리다. 그리고 부모에게 오늘은 아이를 가장 가볍게 안아 올릴 수 있는 날이다. 지금은 힘든 이 시간도 훗날에는 그리운 시절이 될 것이라는 말을 어른들에게서 자주 듣는다.
어떤 글에서 이런 문장을 읽은 적이 있다. ‘아이의 전부는 열 살까지는 부모이고, 스무 살까지는 친구이며, 서른 살이 되면 자신의 아이가 된다고’.
그 말을 떠올리면 부모에게 허락된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나는 힘든 오늘도 언젠가 그리워질 하루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우리 품을 떠나기 전까지 더 많이 안아주고, 더 많이 웃어주고, 더 많이 사랑해 주자고.
아이가 나를 가장 사랑하는 이 짧은 시절을 후회 없이 살아내는 것.
그것이 부모에게 주어진 가장 아름다운 숙제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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