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3. 24. 08:40ㆍ카테고리 없음
몸의 안과 밖이 만나는 문
매일 사용하면서도 가장 홀대하는 신체 부위가 항문이다. 평소엔 존재감이 없다가, 문제가 생기면 갑자기 삶의 표면으로 떠오른다. 우리 몸을 제대로 이해하려는 뜻에서 항문에 관해 살펴 본다.
허은미 작가가 쓴《우리 몸의 구멍》은 인체 여러 기관의 유기적 연결과 각각의 기능을 ‘구멍’이라는 공통점으로 풀어낸 독특한 그림책이다. 숨을 쉬면서 냄새를 맡는 코, 먹고 마시고 말하는 입, 몽글몽글 맺히는 땀구멍, 소리가 들어오는 귀, 눈물 흘리는 눈, 배설물을 내보내는 요도와 항문 등 여러 형태의 구멍들이 우리 몸 곳곳에서 제 기능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구멍이라고 받는 대접이 똑같지는 않다. 입술엔 립스틱을 바르고, 귀엔 보석 귀고리를 달아 치장하지만, 항문은 언급조차 꺼리는 기피 대상이다. 우연히 강남역 길거리에 서서 높다란 고층 빌딩을 올려다 본 적이 있다. 성형외과와 치과가 대부분이었고, 가끔씩 항문 질환 클리닉 간판들도 보였다. 그런데 ‘OO학문의원’, ‘OOO항외과’처럼 진료과목을 요상하게 표기해서 처음엔 오자인가 싶었다. 하지만, 코미디의 웃음 소재로 사용되는 이 작은 근육이 사회적으로 받는 대접이 냉랭하다는 현실을 직시한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항문은, 우리가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가장 성실히 일하는 몸의 일부다. 해외로 장기간 출장을 갔다가 낯선 현지 사정에 몸이 적응하지 못해 설사와 변비로 한동안 고생했던 적이 있었다. 성인의 하루 평균 대변량이 200그램 정도라는데, 산나물 반 근 무게의 대변이 때론 물처럼 때론 돌처럼 형태를 바꾸며 해외에 간 나를 괴롭혔다. 그때 처음으로 항문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되었고, 그래서 알게 된 사실은 ‘이전에 몰랐던 고마움’이었다.
항문은 괄약근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자동적으로 개폐되는 내괄약근과 내 의지에 따라 조절되는 외괄약근이 견고한 이중 구조를 하고 있어서, 사람이 잠자는 동안에도 심장이나 허파처럼 24시간 긴장 상태를 유지한다. 그리고 언제 배출하고, 언제 참아야 할지 판단해서 필요 시엔 신경계, 근육, 감각 기관과 정교한 협업을 한다. 중요한 회의에 참석 중이거나 사람 많은 공공 장소에 있을 때에 변의가 느껴지더라도 아무 일 없이 지나갈 수 있음은, 이 작은 근육이 내가 처한 상황을 정확히 알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감각이 매우 섬세한 항문은 열고 닫는 일만 하지 않는다. 안의 내용물이 가스인지 액체인지 고체인지를 구분하고 온도와 압력을 감지한다. 이와 같은 판단력은 우리 신체 기관에서도 손꼽히는 탁월한 능력이다. 그런 정교한 시스템이 흔들리면 의외로 문제가 커진다. 신체적 불편에 그치지 않고, 개인의 자존감이 무너지면서 사회적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달리 표현하면, 삶의 질이 급격히 떨어진다.

수험생이나 사무직 회사원처럼 오래 앉아 있는 생활, 무리한 다이어트는 항문 혈관에 부담을 주어 치질을 만들고, 과도한 힘주기는 다시 치열로 이어진다. 변을 보는 시간이 길수록, 스마트폰을 오래 볼수록 항문은 힘들다. 다만 그 불편을 말하지 않을 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항문 질환이 생명에 큰 위협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즉각적인 치료를 최대한 미룬다. 이유는 그 부위를 드러내는 것이 어색하고 ‘부끄럽기’ 때문이다.
왜 부끄러워할까? 이것은 본능이 아니라 학습된 감정에 기인한다. 신생아를 보자. 아이의 항문은 변이 차면 저절로 나오는 자동 시스템이다. 그 시기를 지나면 부모가 서서히 배변 훈련을 시킨다. 나홀로 응가에 처음 성공했을 때 아이의 얼굴을 기억하는가. “나왔어!”라고 우렁차게 소리치며 스스로 대견해 하는 모습 말이다. 하지만 외괄약근과 신경 회로가 성숙해지면서 아이는 배의 신호를 인지하고,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판단하게 되며, 해결할 장소와 타이밍을 선택할 줄 알게 된다. 이 정도가 되면 항문은 자동 장치에서 의지에 의한 작동으로 전환된다. 그럴 즈음 아이는 배변 행위가 남들 앞에서 할 일이 아님을 알아챈다. 기특해 하는 부모 앞에서는 한때 자랑거리였지만, 주변의 반응과 사회 규칙을 점점 학습하면서 아이는 배변 행위 자체를 부끄럽게 여긴다.
인류학적으로 볼 때, 문명이 발전할수록 배설은 ‘사적 행위’에 속하게 되었다. 고대 사회에서는 공동 변소, 길가 배설(인도는 지금도 그렇지만), 자연 속 배출이 일상이었다. 그러나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하수도, 실내 화장실, 개인 공간이 등장했고, 동시에 배설은 혼자만의 ‘은밀한’ 일이 되었다. 당연히 배변과 항문이라는 단어는 입에 담지 않을 금기어가 되었고, 여기에 부끄러움이 따라붙었다.
우리는 건강을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온갖 부위를 꼼꼼히 살피면서도, 정작 하루도 쉬지 않는 항문에게는 너무나 무심하다. 맡은 바를 묵묵히 수행하는 이 작은 근육에 대한 존중은 어쩌면 우리 몸 전체를 대하는 겸허한 태도의 출발점일지도 모른다.
항문은 오늘도 우리가 ‘시원한’ 하루를 살 수 있도록 뒤에서 돕고 있다. 이젠 웃음의 대상이 아닌 관리의 대상으로, ‘더럽다’가 아니라 ‘고생한다’는 시선으로, 그 수고를 알아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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