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4. 24. 07:28ㆍ카테고리 없음
통제와 신뢰 사이에서 균형 잡는 훈련
현재 교육은 아이의 올바른 인성과 질서를 잡아주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감정을 읽어 주고 위로하기에 바쁘다.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의 무질서한 행동을 방치하고 있지는 않은가? 엄격하게 가르치고, 절제하고 노력하는 습관을 들일 수 있도록 밀어붙이는 ‘용기 있는 교육’에 대해 생각해 본다.

‘요즘 육아’를 반영하는 양육 신조어들
알파맘. 베타맘. 헬리콥터맘. 캥거루맘. 프렌대디.
언뜻 봐서는 뜻을 짐작하기 어려운 양육 신조어들이다. 급격하게 변화하는 사회의 흐름과 유행만큼이나 육아와 교육 트렌드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양육 신조어들의 의미를 하나씩 살펴보면 그 속에는 부모의 교육 신념이 담겨 있다. 자녀의 미래를 A부터 Z까지 설계하며 엄마 주도적 교육을 중시하는 ‘알파맘’. 반대로 자녀의 삶에 관여하지 않으며 자녀가 원하는 삶을 살도록 조언해 주려는 ‘베타맘’. 자녀 주변을 돌면서 사사건건 참견하며 자녀가 겪을 어려움을 미리 모두 제거하려는 ‘헬리콥터맘’. 이와 유사한 의미로 캥거루처럼 자녀를 품 안에 두고 모든 것을 다 해주려는 ‘캥거루맘’. 친구 같은 아빠를 지향하는 ‘프렌대디’. 부모의 양육 태도를 한 단어에 축약해 놓고 있다.
부모가 자녀를 키우는 데 정말 중요한 것은 최신 유행이 아니라 부모 스스로 정립한 교육철학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부모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기에 교육철학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질 수 없다. 또한 아이를 사랑하고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은 어느 부모에게나 있지만 현실적인 양육의 과정에서 만나는 갈등과 어려움 속에서 부모는 지치고 좌절한다. 아이와 함께 부모 역시 성장하면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다.
나는 어떤 부모인가? 자녀와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가? 자녀가 성장함에 따라 나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이러한 점검이 없다면 우후죽순처럼 퍼지는 온갖 교육정보와 유행에 휩쓸리면서 양육의 본질을 망각하게 되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 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 할 것인가?
부모와 자녀 사이의 올바른 관계란?
미국의 발달심리학자 다이애나 바움린드는 부모와 자녀 간의 상호작용 관찰을 통해 수집된 자료를 바탕으로, 부모의 양육 방식을 ‘애정’과 ‘통제’의 수준에 따라 4가지로 분류했다. 애정이 높으며 통제가 낮은 경우는 허용적 유형, 애정과 통제가 모두 높은 경우는 권위적(민주적) 유형, 애정은 낮으나 통제가 높은 경우는 독재적 유형, 애정과 통제가 모두 낮은 경우는 방임적 유형이다.

많은 사람들이 바람직한 양육 방식으로 오해하는 것이 바로 ‘허용적 유형’이다. 부모는 아이에 대한 애정을 충분히 표현하고 자녀의 요구에 수용적이며, 아이가 생각과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도록 한다. 하지만 자녀의 요구에 관대하고 행동 통제를 거의 하지 않기에 아이들은 이러한 유형의 부모를 통해 사회적 예절, 규칙 등을 제대로 배울 수 없다.
통제되지 않는 아이를 보고 연락한 교사에게 “선생님, 우리 아이 마음은 읽어 주셨어요?”라는 질문을 건넸다는 부모 이야기를 매체를 통해 접한 적이 있다. 실제 필자도 그러한 유형의 질문을 학부모로부터 받은 적이 있다. 한 학생이 친구에게 잘못된 행동을 해서 사과해야 하는데 “저는 지금 사과할 기분이 아니에요.” 하면서 사과를 거부했고 부모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했을 때 “우리 아이 마음은 살펴봐 주셨나요? 아이 마음에 사과할 마음이 들 때까지 기다려주세요.”라는 답변을 들은 적이 있다. 이 학생은 평소에도 친구들과 갈등이 생기면 감정이 폭발하는 등 감정을 바람직하게 표출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아이의 감정을 허용한다는 것은 아이가 여러 사람이 함께 생활하는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감정을 마음대로 표출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감정 읽기의 목적은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올바르게 표현하고 조절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있다. 교실 공동체를 지탱하고 있는 규칙 안에서 이러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며, 규칙 밖에서는 다른 학생들뿐 아니라 결국 소중한 내 자녀 역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그럼 4가지 양육 방식 중 아이의 성장에 가장 탁월한 양육 방식은 무엇일까? 바움린드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애정과 통제 수준이 모두 높은 ‘권위적’ 유형이다. ‘권위’의 사전적 정의는 ‘특별한 능력, 자격, 지위로 남을 이끌어서 따르게 하는 힘’을 의미한다. 때로는 권위라는 말이 ‘다른 사람을 강제적으로 굴복시키는 힘’과 같은 부정적인 뜻으로 전달되는 일도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의미는 그렇지 않다.
경찰이 질서 유지와 안전을 위해 힘을 사용하거나, 의사가 의학적 기술과 지식을 가지고 치료하려는 의지를 더해 권위를 나타내는 것처럼 부모의 권위는 아이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아이를 보호하고 올바르게 키우려는 행위로 나타난다. 아이에게는 사랑에 기반한 부모의 힘이 꼭 필요하다. 나아갈 방향을 보여주고 잣대가 되어 주는 권위, 모범이 되고 목표를 제시하며 경계를 그어 주는 동시에 경계를 뛰어넘도록 독려하는 권위가 필요하다.
권위 있는 부모는 온정적인 태도로 자녀와 대화하기를 즐기면서도 동시에 자녀의 그릇된 행동을 통제하며 보다 성숙한 행동을 하도록 요구하는 데 있어서도 단호하다. 자녀의 적절한 자율성을 인정하여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결정하도록 돕는다. 자녀의 감정, 생각을 잘 이해하면서도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강하게 제한을 설정한다.

조금 더 용기 내어 엄격한 쪽으로
독일의 교육자 베른하르트 부엡은 2014년에 발간한 저서 《왜 엄하게 가르치지 않는가》에서 ‘권위 있는 교육’에 대해 주장하고 있다. 그는 ‘교육자’를 뜻하는 ‘페다고그Pedagogue’라는 단어를 통해 교육의 본질이 ‘이끌어 주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페다고그는 그리스어에 어원을 두고 있는데, 고대 그리스에서 주인의 아이를 교육 장소로 데려가던 노예를 의미한다. 데리고 가는 사람은 아이가 따라올 것을 기대하지만 아이들은 본질상 순순히 따르지 않는다. 페다고그는 말을 듣지 않고 반항하며 규율을 지키지 않는 아이들을 데리고 가기 위해 여러 가지 수단을 동원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부엡은 교육하려는 사람은 아이들을 훈련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훈련에는 인간이 싫어하는 복종, 포기, 절제, 인내 등 모든 요소가 들어있다.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의 욕구를 제한하고 규제를 두고 명령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가 강조하는 것은 이러한 훈련의 핵심은 강압이 아닌 아이에 대한 ‘사랑’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 훈련은 아주 어릴 때부터 필요하다. 어린 나이라 할지라도 아이들은 부모의 권위에 대항하며 지속적으로 힘 대결을 펼치기 때문이다. 사소하게는 반찬 투정부터, 방 청소, 더 자라서는 스마트폰 사용, 학업에까지 아이들과 팽팽한 대결을 펼치는 순간의 연속이며 이는 부모와 아이를 모두 지치게 하기도 한다.
한 번은 필자의 반 학생이 아침 시간 내내 자고 있길래, “너 어제 스마트폰 하다가 늦게 잤니?”라고 넌지시 물어본 일이 있었다.
“선생님, 어떻게 아셨어요?”
“초등학교 고학년 여학생이 밤에 못 잘 이유가 그것밖에 없잖아? 엄마가 너 밤새 스마트폰 보는 거 알고 계셔?”
“우리 엄마요? 우리 엄마 저 못 이겨요!”
학생은 당당하고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지만 대답을 듣는 필자의 마음은 씁쓸했고 안타까웠다. 아이들은 겉으로는 부모의 권위에 대항하고 반항하는 듯 보이지만, 실상 아이들에는 권위가 필요하다. 나를 다스려주고 이끌어 줄 힘 있는 어른이 없다는 것은 아이들이 흔들리고 부딪히면서 깨닫고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드는 존재가 없다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책에서 부엡은 “부모는 훈련과 사랑 사이의 외줄 타기에서 성급하게 사랑 쪽으로, 져 주는 쪽으로 결정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엄하게 교육하다가 아이들의 마음이 닫힐까 봐 두려워하고, 훈련이 아이들의 마음에 부담이 될까 봐 염려한다. 조금 더 용기를 내어 엄격한 쪽으로 가라. 교육이란 결국 이기심과 게으름을 극복하도록 매일 아이들을 다듬어 가는 작업”이라고 말하고 있다.

돛단배 위에서 균형을 잡는 뱃사람처럼
뱃사람은 배가 왼쪽으로 기울면 몸을 오른쪽으로 기울이고, 배가 오른쪽으로 기울면 왼쪽으로 기울이면서 수평을 유지한다. 부모 역시 뱃사공과 같다. 원칙과 관용 사이에서, 훈련과 사랑 사이에서, 일관성과 배려 사이에서, 통제와 신뢰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놀랍게도 아이들은 부모의 삶을 관찰하며 부모의 마음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잘 감지한다. 자녀는 부모의 말이 아니라 부모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에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부모의 사랑을 바탕으로 하는 권위는 아이들의 마음을 잡아주는 인대와 같다. 비뚤어진 마음을 갖고 잘못된 쪽으로 향하던 학생들도 부모의 사랑과 희생을 느끼면 마음을 바로잡기가 훨씬 쉽다.
이제 기나긴 겨울방학이 시작됐다. 아침 기상 시간부터 취침 시간까지 아이들은 그동안 학교에 가느라 누리지 못했던 나만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길 원한다. 반면 부모에게는 아이들의 게으름, 나태함과 싸워나가야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부모의 권위가 잘 전달되려면 부모의 사랑 역시 아이들 마음에 전달되어야 한다.
함께하는 긴 시간 동안 아이들의 마음을 다스려주고 규칙적인 생활 습관을 훈련시켜 주는 것과 동시에 바쁜 일상 속 깊이 나누지 못했던 마음의 대화를 나눈다면 부모의 사랑이 흘러 들어가 아이들의 마음을 잡아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아이들은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 조금씩 성장하는 행복을 누리고 부모 역시 자녀를 키우면서 부모만이 맛볼 수 있는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글쓴이 조아라
어린이와 청소년의 인성교육 및 문해력 교육을 중심으로 21년째 초등학교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또한 마인드교육 전문강사로서 2016년 교육연수원에서 공무원 및 복직 교사를 위한 연수를 진행했으며 세계대학총장포럼 및 교육자포럼에서 프로그램 퍼실리테이터로서 활동했다. 2024년에는 필리핀 교육관계자 대상으로 마인드강연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