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는' 마인드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어요!

2024. 5. 31. 16:13카테고리 없음

'이기는' 마인드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어요!

알록달록 오색 빛깔의 손도장 그림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우간다 소년과 안성은

씨, 이번5월호 표지의 주인공이다.  봄빛처럼 싱그러운 미소가 아름답다. 천혜의 자

을 보존하고있는 아프리카의 숨은 진주 우간다에서 어떤 빛나는 이야기들을 가지

고 왔는지 그 행복 스토리를 들어 보았다.

해외봉사를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고등학생 때만 해도 '졸업 후 펼쳐질 대학 생활은 어떨까?' 설레고 기대도 컸어요. 막

상 대학생이 되었는데, 제가 성격이 엄청 내성적이라  친구들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

가거나 말을 거는 것이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혼자 학업에만  전념한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했던 노력만큼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았어요. 그러다보니 대학 생활에 재

미도 느끼지 못했고 의욕도 생기지 않았어요. 이제 1학년을 시작 했는데 쳇바킈처럼

똑간이 반복하는 하루하루를 의미없이 달려가는 것 같아 마음이 공허했죠.

 

그러던 중, 고등학교 선배이면서 대학교 선배가 우간다로 해외봉사를 다녀온 이야기

를 들려 주었어요.  아프리카의 진주라고 불릴 만큼 초록초록한 자연 경관이 빼어나

게 아름답고,  맛있는 과일이  풍부하다는 점에서 우간다라는 나라에 마음이 끌렸어

요. 또 해외봉사를 다녀온 단으ㅓㄴ들의 체험담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활

동 영상이나 사진을 보면 단원들이 하나같이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더라고요. '저 미

소는 도데체 어디에서 왔을까? 나도 저 행복을 느껴보고 싶다!'라는 마음에 2023년

한 해 우간다에서 해와봉사를 하고 돌아왔어요.

 

말로만 들었던 아름다운 우간다에 첫발을 내디딘 느낌이 어땠어요?

 

저는 그 시대엔 살지 않았지만 '엄마, 아빠로부터 듣던 1960년대 모습이 이랬겠구

나.' 싶었어요. 자연은 개발되지 않아 아름답지만 사람이 사는 집, 건물, 길거리 노점

상 등 모든 곳이 거의 쓰러져 가는 모습이었어요. 저와 다르게 생긴, 윤이 날 정도로

새까만 피부와 꼬불 머리의 흑인에게도 무서워 선뜻 다가갈 수 없었어요. 낯선 곳에

서 1년을 보내는 동안 여라가지 어려움을 만날 것이 짐작은 되더라고요. 하지만 '뭐

든지 부딪쳐보고 열심히 배우자!'는 열정만은 뜨거웠습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배운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요?

 

한국에서는 쥐를 사진이나 그림책에서나 봤어요.  그런데 제가 지내던 방에 손바닥

크기만한 쥐가 자주 나타났어요.  그 사실이 너무 힌들고 무서웠어요.  제 물건을 헤

집고 다니고,  과자를 다 갉아먹고, 비닐봉지에 들어가 있고요.  하루는 자다가 머리

맡에 무언가 움직이길래 만져  봤더니 생명체였어요.  한밤중이라 주변도 깜깜하고,

제가 시력이 나빠서  무엇인지 확인을 하지 못했어요.  다음날 일어나 보니 침대 밑 

쥐덫에 걸린 새끼 쥐가 찍찍거리고 있었어요.

 

순간 등골이 오싹 했죠.  한동안 밤마다  나는 부스럭 소리에  밤잠을 설쳤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지금 생각해보면 다시 경험할 수 없는 추억이에요. 이젠 쥐보다 무서울

건 없을 것 같아요. (웃음) 한국에 돌아와서 보니 우리 집은 5성급 호텔이네요.. 이젠

어떤 것도 다 감사할 수 있어요.

 

어떤 것도 감사할 수 있다는 말에 진정성이 느껴집니다.

 

우간다 아이들에게는  제대로 된 축구공이 없어요.  사용했던 비닐봉지를 뭉쳐서 끈

으로 탄탄하게 묶은 것으로 공을 삼아 차며 뛰놀아요. 한참 차다 보면 비닐봉지가 삐

쭉삐쭉 튀어나오죠.  위험해 보이는 철을 목걸이로 만들어 목에 걸고 다니며 좋아하

고, 사탕수수대를 하나씩 들고 껍질을 까먹으며 세상 행복해 해요.

 

열악한 환경에서 사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슬프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내가 한

국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것이말로 다 할 수 없는 큰 축복이었음을 알게 되었어요.

 

가끔은 뜨거운 햇볕아래 걷다가 지쳐있는 저를 보고, 아이들이 짜피티(밀가루 전)와

시원한 탄산음료를 사서 건네주기도 했어요. 자기들도 먹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사

먹지 못하는 형편인데 말이죠. 너무 고마웠어요.

 

작은 것도 크게 여기며 즐거워하는우간다 아이들을 보니, 가지지 못한 것만 생각하

며 불평을 늘어 놓았던 제가 너무나 부끄러웠어요. 대학생이 된 후, 한 달 용돈 10만

원 받은 것으로는 예쁜 옷도 자유롭게 살 수 없고 점심밥도 절제해야 되는 상황이 무

척 싫었거든요. 이제와서 보니 저는 풍족한 사람이었어요. 작은 꼬마아이들이 제게

감사를 가르쳐 준 셈이에요.

 

현지인들과의 일화가 많을 것 같아요.

 

사실 저와 외모도 다르지만. 위생관념, 시간관념도 다른 현지인들을 보며 저도 모르

게 무시해버릴 때가 많았어요. 포대자루 일부를 자른 것을 설거지 수세미로 사용하

고, 야채 씻을 때 물에 한번 담갔다가 빼고, 항상 시간을 지키지 않는 모습을 보며 '더

러워'. '게을러'라는 선입견을 갖게 되었더라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 수록 그들에게

서 '소리 없는 사랑'을 느끼는 순간들이 생겼어요.

 

우간다에서는 전기가 수시로 나가 어두운 밤이 찾아오면  눈 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그런데 전기만 나가면 항상 누군가 우리 방문 앞에 촛불을 켜두어서 환히 밝

혀주곤 했어요. 그 작은 불빛이 온 방을 가득 비추는 걸 보고 있으면, 그들의 작고 따

스한 사랑이 편견으로 어두운 내 마음을 밝혀주는 것만 같았어요.

 

또 아프리카에선  대부분의 길이 포장되지 않은 흙길이라  신발이 더러워지기 일쑤

에요.  아프리카에선 사람들이 외적으로 보이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 늘 깔

끔하게 다니죠.  하루는 저와 단원들이 무전여행을 하다 고등학생이 사는 집에서 일

주일간 묵었어요. 늦은 밤, 곤히 잠들었는데 화장실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거에

요. '도대체 누가 이 늦은 밤에 씻는거야?' 잠귀가 밝은 저는 잠에서 깨어버려서 신경

질이 났어요.

 

다음날 밖을 나서려는데 신발들이 없어져서 너무 당황스러웠어요.  '설마 누가 가져

갔나?' 주변을 찾아보니 새하얘진 우리 신발이 화장실에 있었어요.  전날 밤 고등학

생이 우리 신발이 더러운 걸 보고는 깨끗이 빨아 놓았던 거에요. 고등학생은 늦은 밤

까지 공부할 것도 많고 학교에도 일찍 가야 되는데,...' 순간 너무 미안하고 부끄러웠

어요. 

 

제가 그들을 하찮게 여겼던 것과 달리, 현지인들은 저의 허물, 부족함을 무시가 아닌

사랑으로 아무말 없이 덮어주고, 따뜻하게 받아주었던 거예요.

우간다에서 지내는 동안 자신의 부족함을 많이  느꼈어요?

 

네, 저의 부족한 모습에 절망스러울 때가 많았어요. 잘하고 싶지만 잘하려고 할수록

 못하는 거예요. 문화 교류 행사인 'K커넥트' 포스터 만들기,  한국어댄스 아카데미를 

영어로 진행하기, 현지인 시귀기 등 원활하게 되는 것이 없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부터 그런 나의 부족함과 연약함이 '감사'로 연결되기 시작했어요. 제가 못하니까 다

른 사람으로부터  배울 수 있었고 함께 즐겁게 일할 수 있었거든요. 영어 표현, 포스

터 디자인, 아카데미 SNS 홍보 등에 대해 우간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트렌드나 모르

는 부분들을 현지인들에게 물어보았어요 그들은 감추고만 싶었던 나의 부족함을 품

어주고, 제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천천히 가르쳐 주었죠.  그렇게 우리는 감출 것 없

이 밝게 드러낼 수 있는, 정말 가까운 친구가 되었어요.

 

특히 기억에 남는 황동이 있다면요?

 

한 시골 학교에서 일주일간 벽화캠페인을 진행한 적이 있어요.  '내가 아프리카에서

벽화를 그리게 되다니!'  출발할 때만 해도 한껏 부푼 기대와 설렘을  가득 않고 있었

어요. 그러나 막상 학교에 도착해서 학교 건물을 마주한 순간,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폐허처럼 낡고 칙칙한 건물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교실

안을 들여다 보니 창문은 다 깨져 있고,  칠판은 낡았고.  각종 벌레와 거미줄이 가득

했어요. '어떻게 이런 곳에서 아이들이 공부를 한다는 거지?'

 

예기치 못한 여러 난관에도 봉착했어요. 지저분한 건물 외관과 큰 교실들을 모두 청

소하고 페인팅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았고,  함께하는  단원들과 소통하면서 부

딪치는  문제도 많았어요. 내 마음처럼 흘러가지 않을 때마다 가득 찼던 패기는 점차

사라지고 모든 것이 불만스러워졌죠.

 

결국은 해피앤딩이었죠?

 

네 맞아요.  제가 보는 눈으로는 모든 것이 불가능해 보였는데, 마침 굿뉴스코 해외

봉사단 우간다 지부 지부장님께서 저희에게 해 주셨던 말씀이 떠올랐어요. "너희가

어디에 가든 너희들의 '마음'이 가장 중요해  무슨 일을 만날 때 마음에서 지면 모든

것에서 지고, 마음에서 이기면 모든 것에서 이길 수 있지,  승자는 어떤 어려움을 만

나도 형편을 이기고 새로운 길을 찾아가지만, 패자는 형편에 져서 늘 불평하며 산

단다."

 

정말 그랬어요. 제가 문제만 바라보며 '못하겠어'라고 생각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

지만,  '이거 아무 것도 아니야!'하는 마음을 가지니까 상황은 달라진게 없어도 마음

에 새로운 힘이 솟아나 남은 일들을 단원들과 즐겁게 헤쳐 나갈 수 있었어요.

 

우리가 벽을 청소하고 페인트 칠하는 내내 신기해 보였는지 아이들은 하루 종일 우

리를 따라다녔어요.(웃음) 그렇게 일주일간의 작업이 끝나자 학교가 아주 깨끗하고

밝아져서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너무 기뻐했어요. 우리의 작은 손길로 폐허 같던 시

골 학교가 다시 태어났고, 그 모습을 지켜보았던 아이들에게도 꿈과 희망을 심어 줄

수 있어서 뜻깊고 보람있는 시간이었어요.

그때 배운 이겨내는 마음이 이후의 삶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 같아요.

 

저는 부담스럽고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만날 때면, 지부장님께 배운 이기는 마인드

를 계속 상기시켜요. 우간다 국민들을 위한 마인드 컴퍼런스를 개최한 적이 있어요.

저는 장관, 총장, 교수 등 귀빈들을 초대하고 접수하는 일을 맡았어요. 하필 그 시기

가 크리스마스와  새해 시즌이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방으로,  고향으로 내려갈

때였어요. 귀빈 100명을 모으는 것이 목표였는데, 사실상 불가능했죠. 초대 메시지

를 보내 드렸는데, 대부분 대답을 해주지 않으셧어요. 게다가 접수 명단 작업을 액셀

로 해야 되는데, 저는 액셀 자격증만 있지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다 잊어버리고 어떻

게 해야 될지 모르겠더라고요. '처음 해보는 길이 없어 보이는 일을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막막하고 두려웠어요. 이렇게 저는 '난 안돼,' 하며 지는 마인드에 지배된 적

이 많아요.

 

하지만 마음에서 지지 않고 '이거 별거 아니야,  나 할 수 있어!' 하며 이겨버리면, 제

가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모든 일들을 거짓말처럼 해낼 수 있었어요.  그렇게

이기는 마인드로 저는 목표했던 귀빈 100명을 초대할 수 있었어요. 단원들이 하나하

나 알려주고 밤 늦게까지  함께 해주어서 액셀 작업도 잘 마무리 할 수 있었고요.  우

긴다에서 만난 모든 사람, 그들과 함께 했던 모든 일들이 잊지 못할 소중한 기억입니

다.

 

은은한 빛을 내며 우아한 기품을 자랑하는 진주는 오랜 시간 불순물을 뱉지 않고 인

내 해야 만들어진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아름다운 자연에 둘러싸인 아프리카의

진주 우간다가 현재의 발전가능성이 높은 나라로 손 꼽히기까지는 식민지배와 내전

으로 장기간  아픔과 갈등이 있었다.  우간다에서 1년을  보낸 안성은씨는 아름다운

진주가 되어 돌아왔다. 새로운 일에 두려움이 먼저 앞서고 모든 것이 불만 스러웠던

그가 우간다에서 풍즐우목風櫛雨沐(바람에 머리를 빗고 비에 목욕한다는 뜻으로 외

지에서 겪는 고생을 비유한 말이다.)을 겪으며 마음에서 먼저 이기고, 부딪쳐 보면서

힘차게 도전하는 법을 배웠다. 어떤 일에든 지지 않고 이겨내는, 앞으로 펼쳐질 그의

진주처럼 빛나는 삶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