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 속 진주를 찾는 기쁨으로 2

2024. 4. 9. 07:16카테고리 없음

진흙 속 진주를 찾는 기쁨으로 2

앞서 말했던 드라마 속에서 의사는 이미 죽은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계속하면

릴 수 있다고 절규했는데, 교육에서는 왜 쉽게 포기헤 버릴까? 결과가 어떻든 과정

속에서 끝까지 사명감을 갖고 계속 해 볼 오기마져 생기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회에서 마지막 외침이었습니다. 다음을 계속 이어 가겠습니다.

 

나를 구닥다리 교사라는 자괴감에 빠지게 만든 학생들

 

지난해에 필자는 특별한 졸업식을 치르게 되었는데,그 일화를 통해 이런 의문을 풀

어줄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당시 필자는 학교에서 교무부장을 담당하면서 담임

을 맡지 않고 3~6학년의 과학 교과만 전담하게 되었다. 전담교사의 경우, 학생들을

수업시간에만 만나니까 아무래도 마음 속 깊이 대화를 할 시간은 부족하다. 수업 시

간에 반드시 수행해야 할 교과 진도가 있기 때문에,  학습에 방ㅎ되는 행동을 할 때

만 생활지도를 하는 수준으로 운영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작년 6학년 학생들에게는 과학 교과교육보다 인성교육을 해야 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전에 이 학급을 맡았던 담임 교사마다 학생들의 장난이 역대급으로 심하

다며 혀를 내둘렀다. 교직 경력이 제법 되는 필자조차도 이 학급에 수업하러가면 더

이상 아이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구닥다리 교사가 된 것 같은 자괴감을

느낄 때가 종종 있었다.

학생들의 협조가 쉽지 않았던 졸업식 이벤트

 

이런 학생들의 졸업식을 기획하면서, 필자는 마지막으로 뭔가 의미 있는 경험을 하

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교장, 교감선생님께  졸업식 프로그램에 대해 허락

을 받은 후 교무회의를 통해 실제 협의에 들어갔다.  후배들과 교직원들의  졸업 축

하 영상을 찍고, 포토존 및 공연, 선물 등을 마련해 감동을 주기로 했다. 거기까지는

준비하는 데에 별 무리가 없었다.

 

그런데 마지막 순서인 부모님과 함께 하는 특별 이벤트 준비에 문제가 생겼다. 졸업

식장에서 학생들은 부모님과 나란히 자리에 앉고, 옆에 계신 부모님께 직접 쓴 감사

편지를 읽어 드리는 순서를 넣겠다고 말하자 학생들이 일제히 반발했다. 전에 하지

않은 것을 왜 시키냐며, 우리는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했다. 2학년 때 이후로 부모

님께 편지를 써 본적이 없다는 학생들은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같은 표현을 하는

것 자체가 너무 오글거려서 싫다고 했다. 그러니 선생님이 프로그램에 넣어도 자기

들은 편지를 안 쓰고 안 읽을 것이라며 노골적으로 거부했다.

 

하기 싫은 마음을 바꾸고 따라준 고마은 학생들

 

'이렇게 하기 싫은 데, 그냥 포기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니야, 한번 해

보자.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일단 시도라도 해보자'라는 쪽으로 학생들의 마

음을 돌려볼 궁리를 했다. 유투브에서 가족과 관련된 감동 영상을 찾아서 함께 보고

부모님의 사랑을 오해했던 내 경험도 이야기하면서 떨리는 심정으로 학생들에게 편

지지를 나누어 주었다. 

 

마음이 조금 누그러진 아이들이 연필을 잡고, 한숨을 푹푹 쉬면서 억지로 한 글자

두 글자 쓰기 시작했다. 시험을 보는 시간보다   훨씬 더 집중하고 긴장하는 모습이

었다. '끝까지 안 쓰겠다고 떼를 쓰면 어떡하지?'  걱정 스러운 마음도 있었는데, 다

행이도 모두가 편지 쓰기를 완료했다. 결과에 대한 기대보다는 그저 마음을 바꾸고

지도에 따라준 학생들이 고마울 뿐이었다.

 

학생들의 마음을 알게 된 감동의 졸업식

 

그리고 며칠 후, 드디어 졸업식 날이 되었다. 순서대로 잘 진행 되던 중 마지막에 이

어지는 광경을 보고 너무 놀랐다. 부모님께 편지를 읽어드리던 학생들이 눈물을 왈

칵 쏟아내는 것이다.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몇 글자 읽지도 못했는

데, 눈물보가 터져 힘들게 한 글자 한 글자를 간신히 읽고 있었다.

 

듣고 계시던 부모님들도 눈시울을 붉히고, 서로 눈물을 닦아주고 안아주는 모습에

필자도 코끝이 찡했다. 그 자리에 함께 있던 교육 관계자분들도 요즘 졸업식에 우는

학생들을 찾아보기 힘든데, 참 따뜻한 졸업식이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졸업식을 기획했다는 칭찬에 뿌듯한 마음이 들기보다는 아이들의 태도에 뒤통

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저 아이들의 마음에 저렇게 예쁜 마음이 있었다고?  무슨 말

을 해도 잘 받지 않고, 자극적인 말이 습관처럼 입에 달려 있고, 마치 선생님의 지도

에 거꾸로 행동하기로 작정한 청개구리 처럼 보였는데,... 절대 바뀌지 않을 것 같았

는데.... 속 깊은 곳에는 예쁜 마음이 살아있었어, 가리워 져서 내 눈에 잘 보이지 않

았을 뿐이야'.

 

조금 더 일찍 발견했더라면, 포기하지 않고 해보았을 다른 활동들도 떠올라 아쉬운

마음도 겹쳤다. 그리고 올해 새 교육과정을 계획하는 기간에 그 졸업식 사례를 주변

교사들과 공유하고 토론 하면서 교사 마인드를 다시 리셋reset하고, 지혜를 모아 더

새로운 프로그램들을 기획해 보았다.

 

진흙 속 진주를 찾아내는 기쁨

 

누가 봐도 아름답고 훌륭한 값비싼 진주가 흙 속에 뭍혀 있다고  가정해 보자. 진주

가 거기에 없다고 생각하면 그냥 지나치겠지만,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면 흙을 걷어

낼 것이다. 어떤 진주는 흙에 가볍게 덮혀 있어서 입으로 '후~' 하고 불기만 해도 영

롱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지만,  어떤 진주는 두터운 흙 속에 돌처럼 굳어 려서 망

치로 두들겨 깨야 그 모습이 드러날 수도 있다. 어떤 진주는 세제로 씻어야 하는 것

도 있을 수 있다. 아무리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고 해도 흙 속에 진주가 있다는 것만

알면, 그냥 넘어가거나 포기하지 않고 진주를 찾아내려고 할 것이다.

 

교사에게 필요한 마음가짐이 이것이 아닐까 싶다. 사람에겐 아름다운 마음이 숨어

있다는 것, 환경 대문에 잘 드러나지 않고 추한 모습으로 보일 수 있어도, 진주처럼

아름다운 형상이 보이지 않는 곳에 이미 만들어져 있음을 믿어야 한다. 그러면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흙을 걷어낼 방법들을 찾는 과정이 재미

있고 신날 것이다. 그리고 어렵게 얻은 진주일수록 더욱 사랑스러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