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성장 발판이 된 특별한 시간들

2023. 4. 3. 18:46카테고리 없음

나의 성장 발판이 된 특별한 시간들

 

"푸이르토리코에서의 1년이 제가 살았던 20년을 합쳐 놓은 것만큼 대단한 경험들이었어

요."  강에스더 학생은 해외봉사를 가기 전에도 학점관리를 열심히 하고,  스팩을 쌓는 등

착실히 살았다.  그러나  "프에르토리코에서는 평범한 일상을  보내더라도 하루하루의 의

가 깊었다"라고 고백한다. 그의 밀도 높은 11개월에 어떤 일이 잇었던 걸까?

 

그곳에서 경험한 일들을 하나씩 들어볼게요.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이었나요?

 

푸에르토리코 한국전 참전용사분들을 만났던 일을 꼽고 싶어요. 1950년 당시 한국전쟁에

푸에르토리코는 6만1천 명으로 미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군인을 파병했어요. 그럼에도 미

국령이라서 참전국 명단에서는 찾아볼 수 없지요.

 

지난해가 한국전쟁 정전 협정 70주년이었어요. 저희 단원들은 '그분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한 분이라도 더 찾아가 감사를 전하고, 이 소식을 알려야 한다'라는 마음으로 관련 부서를

수소문해서 참전용사를 찾아갔어요. 김과 홍삼 등 한국에서 가져온 식품을 선물해 드리고,

한 달에 한 번씩 꽃과 태극기를 들고 국립묘지의 한국전 참전용사 묘를 찾아 갔어요. 보훈

병원도 자주 가서 지병을 앓고 계시는 참전용사 분들의  휠체어를 끌어드리고 진료소까지

이동해 드리곤 했습니다.

그분들을 직접 만나뵌 소감이 어땟는지요.

 

현재 약 900여 명이 생존하세요. 저희가 만난 분들 중 후안 곤잘레스(92세) 할아버지가 계

세요. 그분은 요즘도 전쟁 장면이 TV에 나오면 직접  겪었던 참상이 떠올라 채널을 돌리신

대요. 고인이 된 전우가 생각나 눈물을 훔치는 분도 계셨습니다.

 

라파엘 리베라(92세) 할아버지는  "전쟁고아들이 먹을 것을 얻으려고 외국 군인들 주위로

몰려들었는데,  제가 군 식량을 아끼고 모아서 그 아이들에게 나눠줬어요.  아이들이 그걸 

받으면서 나를 '아버지'라고 불렀어요.'라고 말하며 한국소년에게 배운 아리랑을 흥얼거리

셨어요.

 

11개월간 봉사하고 돌아가는 우리하고 달리, 이분들은 낯선 나라에서 언제 고국으로 돌아

갈 수 있을지도 모른채 하루하루 사선을 넘나들며 싸우신 거잖아요. 우리가 평화로운 대한

민국에서 자랄 수 있었던  건 이런 분들의 희생  덕분이라는 걸 실감했어요. 그럼에도 피땀

흘려 일군 평화의  터전 위에서 발전된  대한민국을 그리워 하며,  "죽기 전에 꼭 한번 다시

가 보고 싶다"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확실히, 해외로 나갔을 때 나라의 소중함을 더 진하게 느낄 수 있는 것 같네요.

 

공감합니다. 푸에르토리코에서 한류 열풍을 느낄 때도 저절로 자부심을 느꼈던 것 같아요.

또, 그 한류를 활용해 다양한 활동도 기획할 수 있었고요. 저희가 정기적으로 하는 활동 중

에 '해변 정화 활동'이 있었어요. 푸에르토리코는 해양보호가 중요한 나라이고, 해양오염을

방지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쓰레기 수거에요.

 

단원 중 한 명이 K-pop과 해변 정화활동을 접목 시키자는 아이디어를 내서 특별한 행사를

기획했어요. 처음 행사를 열었던 에스캄브룬 해변은 모래 속에 뭍힌 병뚜껑과 담배꽁초가

많았어요.  참가자가 다 모였을 때,  우선 방탄소년단BTS의 노래 버터에 맞추어 체조삼아

몸을 풀었어요. 그리고 양국 청년이 한 팀이 되어 정해진 시간 동안 해변에서 쓰레기를 주

웠죠. 가장 많이 쓰레기를 수거한 팀에게는 조미김과 라면 등을 상품으로 주었습니다. 2부

순서로 K-pop 노래방과  랜덤플레이 댄스 경연을 했는데요.  참가자들이 무척 즐거워했어

요. 노래와 댄스로 언어의 장벽도 가뿐히 뛰어넘더라고요.(웃음) 이후에도 SNS로 행사를

홍보했는데, 많은 참가자가 모여 행사를 여섯번이나 더 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 문화를 알리는 환경보호 활동을 동시에 한 셈이네요.

 

네, 사실, 참가하는 저희가  더 즐거운 행사였죠.  그런데 생각지 못한 상을 받기도 했어요.

라모스 교육부 장관님께서  "한국에서 온 청년들이 우리  학생들과 함께 한국 문화를 즐기

는데 그치지 않고 해변 정화 활동 등 다양한 봉사 활동으로 희생정신을 몸소 보여 주었다."

라며 칭찬해 주셨는데요. 푸에르토리코 국회의장상, 교육부 장관상을 탔고 수도인 산후안

시장님께 표창도 받았어요. 모두 12차례나 감사장을 받았습니다.

 

대단하네요. 한국에서도 1년에 12차례를 수상하긴 힘들 것 같은데요.

 

맞아요.(웃음)  한국에서는 받아본 적이 없는 상, 하원 의회 이름의 메달도 받았습니다. 푸

에르토리코에서 보낸 시간들은 제 성장의 발판이에요.  저 혼자라면,  도전하지 못했을 일

을 많이 했어요.

 

지진 피해 지역으로 가서 청소와 페인트 칠을 하는 등 복구 활동도 했고요.  코리안 아카데

미를 열어서 한국의 놀이문화,  전통음식도 소개했어요. 이런 소식을 글과 사진, 영상 등으

로 정리해서 한국 언론사에 제보했어요.  조선일보, 연합뉴스, 뉴스1, 뉴시스 등 국내 다양

한 언론사들이 "자원봉사활동으로 해외에서 대한민국을 알리는 청년들이 있다."라며 저희

를 보도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KBS 라디오 '한민족 하나로'의 일요 초대석에도 나갔어요.

처음에는 떨렷는데, 푸에르토리코에서의 추억을 풀어 놓다 보니 어느새 하하호호 웃으며

1시간이 훌적 지나가 있었어요. 해외봉사 덕분에 보고 느끼는 세계가 무척 넓어진 걸 느껴

요.

 

그는 푸에르토리코에서 누구보다 행복했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비단 다양한 경험과 좋

은 추억을 얻었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한다.  나 자신보다, 다른이를 먼저 돌아보는 진정한

영웅을 만나고 실제로 타인을 위한 삶을 살아보면서 누군가를 돕는 기쁨이 무엇인지 맛볼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그는 자신만을 위해 살았던 시간을 뒤로하고, 이제 새로운 길을 걸

어가려 한다.

 

강에스더 푸에르토리코 굿뉴스코 해와 본사단원